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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석이나 VIP석이나 그 자리에 있는것만으로 나는...
이정환 7891
2004년 3월 11일 00:00:00
없음
행복했다.

그냥 검은천막 안에 수많은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아서
고양이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었다.

감성적인 성격 탓으로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겨 하는 나에게
캣츠의 내한공연은 지구가 두조각으로 나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몇달 전 경대 대강당에서 있었던 뮤지컬 `시카고`를 본다고
며칠간 밥 굶고 사브작사브작 돈을 모아서 혼자서
즐기고 왔었다.
하지만 당시의 고통을 이루 말할수가 없어서
(나에게 밥은 생명이었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부모님을 설득해서 결국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그 이름도 찬란한 캣츠, 4만원짜리 A석을 당당하게 예매했다.

"아들래미의 무한한 장래성을 굽어보셔서 좀더 비싼데로 예매하든가
아니면 저혼자 VIP석에서 보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가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밟힐 뻔 했기에
약간의 삐짐과 아쉬움이 교차했지만 4만원에 나 자신을 억지로 만족시켰다.

2시 공연이었는데 동생의 게으름 덕분에 1시 58분에 도착해서,
좌석을 찾고 앉자마자 주위는 어두컴컴해졌다.
연이어 땀도 마르기 전에 바로 옆에서 고양이들이 불쑥 튀어나와
쏙 들어갔던 땀방울들이 순간 다시 나온 느낌이었다.


드디어 캣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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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캣츠의 끝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젤리클 송부터 마지막 무대인사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게 만들었던 하나하나의 장면을
모두 나열하고 싶지만,
행여나 나의 부족한 글솜씨로
세계 최다 공연에 빛나는 작품의 위상을 낮추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겸손한 마음가짐에 최대한 흥분된 가슴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한마디로 고양이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다를 바 없었다.

고양이에게는 럼텀터거가 있다면 인간에게는 이휘재가 있었다.

기차원이 있었고 도둑놈이 있었고 선지자가 있었다.
과거에는 잘 나갔지만 현재는 형편없는 자가 있는 반면
과거는 모르지만 현재만큼은 떵떵거리는 부자가 있었다.
왕따가 있었고 인기남이 있었다.
왕따는 모두가 싫어했고 인기남은 모두가 좋아했다.

과연 인간과 무어가 다르단 말인가?

캣츠를 만든 훌륭한 분께서는 인간에게 어떤 메세지를
던지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럼텀터거가 아니라 그리자벨라가 아닐까?

공연 막바지에 매혹적인 그리자벨라가
과거의 아름다웠던 자신을 떠올리며 메모리를 열창하던 장면,
새로운 생명을 얻는 하나로 간택된 후 다른 고양이들과 이별하는 장면,
선지자의 손을 떠나 천상으로 올라가는 장면,,,

태어나서 딱 세번 울어야 한다는 남자의 자존심을 뒤로 하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남자로 태어나 한 삼백번은 울었지 싶다.)
특히 그리자벨라의 마지막 메모리 열창은 나의 귀와 가슴에
고이 새겨 오래도록 간직할 것 같다.
노래를 부르며 실제로 눈물을 흘렸던 그리자벨라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나는 그 순간만큼은
동일한 정신세계에 빠져있었다.

인간은 항상 과거를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잘나갔다`는 식으로...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자칫 현재의 도피수단으로 무조건적인 과거로의 동경은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소멸시켜 버린다.
그리자벨라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 고양이로 선택된 이유도
단순히 과거만을 생각하고 모두에게 무시당하기에 불쌍해서가 아니라
메모리의 한 구절처럼
예전의 추억을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삶,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화려한 의상, 실수하나 없는 완벽한 율동, 배우들의 멋진 무대매너...
기타 등등 눈으로의 즐거움으로 끝이라면 캣츠는 이처럼 사랑받지 못했다.
이야기가 있고 줄거리가 있고 메세지가 있었기에
가슴으로의 즐거움으로 사랑받는 뮤지컬이 된 것이다.

고양이의 얼굴을 직접 만져보았고,
누구보다 흥겹게 공연을 보았지만,

럼텀터거의 품에 안기는 관객이 되고 싶어서
(물론 나는 남자이지만....)
오늘의 전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
캣츠가 다음 기회에 내한한다면
그때는 지구가 두조각으로 나뉘더라도
VIP석으로 예매할테다.
물론 그때는 여자랑 (엄마랑 여동생 말고..) 함께하지 않을까?

후훗,, 행복한 상상^^


2004년 2월 29일 나의 다이어리에 커다란 별표 하나 새겨넣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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