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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지킬앤하이드를 보고 오다
박지은 7930
2006년 2월 19일 00:00:00
없음
지킬앤하이드를 보다.

- 2006년 2월 18일 오후 3시 30분 공연

지킬앤하이드를 보러간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2004년 초연된 공연에 대한 기사를 읽고 도대체 어떤 공연이기에 전회매진에 전회 기립박수와 심사위원 만장일치에 뮤지컬 대상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을까? 하는 궁금증과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정보부족과 기회부족으로 인한 한스러움을 달래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올해 다시 지킬앤하이드가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연말을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2004년 EBS에서 방영된 편집분 공연실황을 보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목마름에 대한 최소한의 해결책에 불과했고 공연실황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스러웠지만 실제는 그 감동이 배가될 거란 기대도 한몫을 했다. 드디어 12월 26일 예매가 시작되고 몇 분안에 매진이 되었다는 예매사이트에서의 문구를 의심하면서 겨우 전화예매를 통해 좌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드디어 라는 표현이 이보다 더 잘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일찌감치 공연장에 도착한 우리는 티켓을 받고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드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다들 주연배우들이 새겨진 현수막 앞에서 그리고 대구 뮤지컬축제현수막앞에서 제각기 얼굴도장을 찍느라 바빴다. 그네들의 얼굴에서도 어느 정도의 기대감과 들뜸을 감지할 수 있었다.

입장이 시작되고 자리를 잡고 드디어 시작이다. 유능한 의사인 헨리지킬은 인간의 선과 악을 완전히 분리해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험을 하고자 하나 의사회에 반대에 부딪힌다. 그런 지킬 에게는 사람들이 천사의 미소를 훔쳤다고 말하는 엠마라는 어여쁜 약혼자가 있다. 엠마와의 약혼식이 있은 후 친구들에 의해 한 클럽으로 가게 된 지킬은 루시라는 거리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지킬은 여느 남자들과 달리 그녀에게 친구가 필요할거라며 명함을 건네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지킬은 스스로를 상대로 실험을 강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듯 위험한 그의 실험은 자신을 선과 악으로 분열하면서 자신 안에 악으로 상징되는 하이드라는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는 차즘 그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대했던 임원들을 차례로 살해하기에 이른다.

하이드가 지배하는 순간 지킬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걸 알게 된 친구 존은 그를 도우려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지킬은 하이드가 집착한 루시에게 떠날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그녀가 런던을 떠나기도 전에 하이드는 그녀를 찾아가 살해한다.

지킬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되고 하이드를 밀어내기 위해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엠마와의 결혼식 날 하이드로 분출된 자신을 스스로 찌름으로서 고통스런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인간의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드러내는 무거운 주제지만 공연자체는 진지하거나 지루한 것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도 간혹 나오곤 했는데 예를 들면 클럽에서 루시와 지킬이 처음 만난 날 루시가 지킬에게

“내 얼굴이 얼마나 날아갔나 봐주세요.

라는 질문에 지킬이

“웬만큼은 남아있네요.”

하는 장면이나

스스로에게 투약을 한 뒤 일기를 쓰면서
지킬이

‘어지럽다……. 가벼운 이 느낌은 뭐냐? 하하하(정서가 불안한 듯 뜬금없이)
……. 뚜렷한 행동의 변화는 없다’ 고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또한 커다란 오페라하우스 전체가 관객과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 2시간 30분을 이끌어가는 장면은 차라리 감동이었고 기적이었다. 숨소리조차 죽여가면서 조금이라도 무대를 잘 보기 위해 한껏 몸을 앞으로 당겨진, 한결같은 눈동자 - 물론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은 못 참는 분들이 몇 분 계셨지만 -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배우들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풍부한 성량의 노랫소리에 한곡 한곡 박수세례…….

지금 공연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새삼스럽게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다. 모든 노래가 좋았지만 그 중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 이라는 곡이 가장 좋았다. 노래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주인공 지킬의 실험을 앞둔 간절한 마음의 가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공연을 보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인 눈물 때문이다. 주인공의 감정과 내 맘이 일치되었기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내 이성을 압도한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얼마 만에 흘려보는 따뜻한 눈물이었던지……. 다만 공연실황에서 나를 소름 돋게 했던 가장 기대를 했던 Confrontation 라는 곡은 기대가 컸던 탓일까? 조승우의 뒷심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훌륭했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공연이 끝이 났다. 무대 인사를 나온 그들의 웃음에서 관객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었을 게다. 오페라하우스에 가득한 공기는 무엇보다 아름다웠음을. 짧은 글 실력으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 조승우의 힘찬 손놀림(?)의 인사로 무대는 막을 내렸다.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줄 수 있는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배우뿐 아니라 아름답고 다양한 무대장치를 순식간에 변화시키던 무대장치담당자(신기했다)와 신비롭고 다양한 감정표현을 나타내주던 조명담당(배워보고 싶다), 의상과 공연 내내 직접 연주하던 아름다운 음악가들(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수시로 잊었지만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모두에게 너무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뜬 이들에 비해 음악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음악을 연주해주신 분들에게 박수를 함께 보낸 이들에게 미소를 띄워 보내드리고 싶다. 모든 게 좋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질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머플러 매신 여자분들이 사람들 사이에 서서 꼭 빨리 내보내고 싶다는 인상을 심어준 건 기분이 좋질 않았다. 공연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빨리 자리를 정돈하고 다음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꼭 쫓겨나는 기분이 살짝 드는 건 나 혼자였을까? 오페라하우스에는 멀티비전을 설치하면 안 되는 걸까? 하는 것도 아쉽다. 채워지지 않는 소소한 불편들이 다음엔 없었음 하는 바람이다.

하루가 지났다. 실황음반은 비록 2004년 것이라 배우들도 다르고 컨디션도 다르지만 아직도 어제의 감동을 되새김질 하는 중이다. 당분간 나는 그 감동에서 일찍 헤어 나오고 싶지 않다. 그들처럼 자신이 가장 원하고 기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매년 1편씩 봐온 문화공연을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될 수 있으면 VIP석의 열망을 채울 수 있기를.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런 뮤지컬과 같은 공연을 볼 수 있게 되길 원한다. 그러려면 지역적 차이 빈부차이가 문화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되지 않아야 될 것이다.

끝으로 가슴속에 맴도는 공연의 한 대사를 적어보고 싶다.

“신께 맹세컨대 지금처럼 당신이 필요한 적이 없었어. 사랑해요.”
지킬이 엠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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