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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글] 최보경 님이 쓰신 글입니다.::::::::::
11월 23일 일요일 점심을 일찍 챙겨 먹고, 딸 아이와 함께 친정을 나섰습니다. 남편이 중국 출장 가고 없어서 3살짜리 아들은 친정에 맡겨 두고 딸 아이와 둘이서 캣츠를 보러 갔습니다.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오면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봐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엄마 맞어? 예, 엄마 맞습니다. 우리 딸에게는 충실한 엄마입니다. 아들은 어려서 못 데리고 들어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디 볼일 보러 가족들끼리 가다가 MBC 방송국 앞을 지날 때 cats 포스터를 보고 '저기 cats 붙여놨네' 했더니, 돌아오는 길에 딸이 cats 어디서 하느냐고 물으니 그때는 27개월인 아들이 'MBC'라고 대답하더군요. 안 듣고 있는 줄 알았는데, 차 안에서 엄마와 누나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나봅니다. 하도 신기해서 온 가족이 놀라워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cats라는 말만하면 우리애는 MBC라고 합니다. 거기에 포스터가 붙어있어서 MBC에서 하는 줄 알았나봐요. MBC 방송국이 아닌, 전시컨벤션 센터에 도착하니 빅탑 시어터가 보였습니다. 여름에 부산의 벡스코 전시를 보러갔다가 보았는데. 움직이는 오페라 하우스. 호주에서는 도심을 벗어나 자연공간에 설치되어 낭만적이라고 들었는데, 대구의 전시컨벤션 센터 주차장은 좀 좁아 보였습니다. 빅탑 시어터를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커다란 폐타이어와 쓰레기들.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무대를 보니, 여름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보았던 세익스피어 연극이 생각났습니다. '바드 온 더 비치(Bard on the Beach)'라고 멋진 해변에 천막을 치고, 세익스피어 연극을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던 광경,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보이던 하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변하는 하늘색 따라 저절로 변하던 무대배경이 생각납니다. 그때 앞쪽에 앉아서 배우들의 얼굴 표정이라든지, 숨소리까지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무대가 없나 했는데, 이번 빅 탑 시어터에서 그런 기분을 살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많이 닮은 고양이 세상을 통해 인간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캣츠는 시종일관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고양이 이름짓기. 고양이에겐 적어도 세 개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가족들이 부르는 평상시 이름, 독특하고 유일한 이름, 남에게는 말해주지 않는 고양이 자신을 위한 비밀의 이름. 우리 애들도 이름이 몇 개 있지요. 이선영이라는 평상시 이름, 내가 부르는 우리 공주님이라는 이름, 동생이 부르는 누나라는 이름(?), 할머니께서 부르시는 우리 강새이(강아지).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고 하는데도 기어이 찰칵! 하는 사람이 있습디다. 그러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진행요원이 나타나 압수. 기차역의 감독원 스킴블샹크스의 노래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극장고양이 거스의 원래 이름이 아스파라거스라는 것도 재미있었고, 거스가 연기했다는 그로울타이거의 최후도 멋있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캣츠의 절정은 그리자벨라의 메모리겠지요. 저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지금 가르치는 과에 현재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나오는 단어 '메모리(memory)'를 이야기하며, 교실의 스크린을 통해 그리자벨라의 메모리를 들려줍니다. 숨을 죽여가며 보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 것이 산 영어교육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엘리엇의 유명한 황무지의 한 구절을 들려주며,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나 극장고양이 거스에 대한 영시를 3학년 학생들에게 복사해서 줄까 합니다. 1학년에게는 젤리클 고양이노래가 좋겠군요. 초등3학년인 딸애도 영어를 좀 배워서인지 영어로 하는데도 재미있게 보는 것 같더군요.(물론 못 알아듣는게 더 많았겠지만, 자막도 열심히 봐가며 아는 척을 하는게 기특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대학생들도 아는 단어 나오니까 따라하며 좋아하더군요. 캣츠를 봤는데 앵콜 공연을 또 보러 갈거라는 아이들을 보며, 캣츠의 매력이 뭐길래 본 사람들이 모두 보고싶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또 보고 싶으니까요. 수년전에 런던의 한 극장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영국의 무대 장치에 놀랐고, 그런 극장이 엄청 많다는 사실에 또 놀랐습니다. 밴쿠버의 퀸 엘리자베스 극장에서 '마마미야'를 보면서는 어르신들이 많은 걸 보고 또 놀랐습니다. 흥겹게 음악에 맞춰 몸을 들썩여가며 즐기는 그들을 보며 우리의 공연 문화도 좀 이랬으면 했는데, 이번 캣츠를 보면서 박수에 인색하고 감정표현에 서투른 우리 대구 사람들도 좋은 공연 앞에서는 반응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한동안 캣츠에 빠져서 좋은 기억(memory)들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